소주 백 일흔 두잔...情...
장작을 패듯 情을 쌓을 수 있다면 우리는
그리움이란 땔감을 태우지 않아도 춥지 않을테다.
무대리가 이자를 굴리듯 情을 쌓을 수 있다면 우리는
아쉬움을 갈아마시지 않아도 갈증은 모를테다.
지하철 노선처럼 짜여진 기다림으로 情을 쌓을 수 있다면
밤을 새우지 않더라도 새벽을 만날 수 있을터이다.
유행가 가사를 외듯 情을 쌓을 수 있다면
눈물 한웅큼 짜내기위해 어린시절 내 슬픈 추억을 억지로 짜내지 않아도 좋을테다.
신호등을 건널때처럼 가슴 졸이지않고 情을 쌓을 수 있다면
달빛 한조각 베풀지 않는 밤이어도 궁색하게 조바심을 내지 않을터이다.
마흔살 먹은 재떨이가 꽁초를 모으듯 情을 쌓을 수 있다면
기관지의 푸른 가지가 시커멓게 그을려도 두려워하지 않을테다.
낡디 낡은 수첩귀퉁이에 대충 열심히 이름들을 채워가듯 무심히 情을 쌓을 수 있다면
혼자서는 말 한마디 못하는 저 병신 전화기를 부숴버리지 않아도 용서할터이다.
끄떡없는 척 빈 병을 세워가듯 情을 쌓을 수 있다면
너와 나 주정뱅이가 되는 그까짓거에 머뭇거리지 않아도 될터이다.
누래진 헌혈증서를 책갈피에 끼워넣듯 情을 쌓을 수 있다면
빈혈로 응급실에 누워있게 되더라도 우리 창백함을 몰래 서러워하지 않을테다.
등굽은 할매의 지팡이처럼 情을 쌓을 수만 있다면 , 그렇게 情을 쌓을 수만 있다면
우리는 우리 사는 일을 그다지 아파하지만은 않을터이다.
막차가 코 앞에서 빠이빠이 하는, 14K 반지를 닦다 괜스리 눈물 나는, 주사위가 모로 서는,
소나기 쏟아질듯 말듯 하는, 어스름한 저녁 골목에서 외로움 줍는, 새벽에 배 살살 아픈...
그리워하고... 아쉬워하고... 기다리고... 전화를 하고... 情을 쌓으며...
사랑하며 사는 것일터..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