어제도 묵고... 오늘도 묵고...

소주 백스물석 잔...주막

시골막걸리 2008. 12. 1. 02:00

 

사람 냄새가 죽으라고 그리울때면 산 아래 <주막>에
간다. 그 그리움의 갈증이 해일이 되어 내 신열의 둑을
범람해 버릴때면 <주막>에 간다.


못대가리 빼꼼이 불거져 나온 마치 내 가난을 닮은,
나무 의자 별로 서럽지 않은 아니, 아니 서러워도
그런대로 견딜만한 비 우왁스럽게 새는, 조금은 답답한
기침을 해대는 작은 <주막>에서 겨울 새벽의 자투리를
빌렸다.


어제의 그 연인들이 어제의 그 자리에 오늘의 소망을
빌며 기대어 있다. 연신 재잘거리면서도 행여 제 짝이
젊은 취객이 되어버릴까봐 아직까지도 씩씩거리는
산 낙지를 용감하게 집어 젊은 친구의 입에 연방 넣어주는
이제 막 소녀티를 벗은 듯한 그 싱그러운 처녀의 미소가,
마냥 웃고만 있는 그 연인들의 꼬옥 안은 두 체온이
제법 따숩다.
'달구새끼 발모가지 한 접시로 몇 시간 째 그 큰 엉덩짝을
붙이고 앉아 있느냐'는 입이 걸기로 소문난 <주막> 할매의 걸쭉한
새벽을 닮은 욕지거리에도 아랑곳 없이 오히려 무지하게 큰
주먹과는 아무리 쳐다봐도 어울리지 않는 작은 잔을, 조금은
당황스러움으로 사양하는 내게 막무가내로 쥐어 주는
마을 버스 기사 10년 경력의 민씨 아저씨의 텁텁하고도
넉살 좋은 웃음 소리.
"삼촌아 ! 너 오늘 술 너무 많이 먹잖아!
삼촌 그러면 무지무지 나쁜 사람이야 !"
얼어서 벌개진 고사리주먹을 내보이며 민씨 아저씨를
아까부터 흘겨만 보는 <주막> 할매의 손녀 딸 지영이.
 "야, 이년아! 그 뚱뚱하다 못해 쌀 뜨물에 불어터진 것
같은 놈이 어째 니 삼촌이냐. 니 할애비가 인물하난
신성일이 빼마리를 예배당 종치듯 패고도 주리가 남을 냥반인데..."


낙지 한 접시를 더 시키려 접시를 내밀던 어린 연인들도,
남은 달구새끼 발모가지 하나를 놓고 침만 삼키던
아저씨도, 할매도, 제법 취해버린 나도 웃음소리에
묻혀버렸다. 까만 눈망울이 시리도록 맑은 지영이는
내 무릎에서 잠이 들고......


사람 냄새에 기분좋을 만큼 취해 있었다.
아직 선 잠이 채 깨지 않은 그 새벽에
나는 고집스럽게도 취해 있었다.

아이가, 또 지각하겠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