어제도 묵고... 오늘도 묵고...

소주 백열넉 잔...어느 날

시골막걸리 2008. 11. 24. 02:10

 

어느 날 비 추락하는 처마 밑에서

어느 날 어느 이의 등기가 꾸벅 인사를 하는 날

어느 날 연극 초대권을 손에 올려놓고

어느 날 빨래가 산더미처럼 쌓인 날

어느 날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었던

어느 날 내 거울에 그림을 그릴려고

어느 날 변소에서 시인이 되고 싶은

어느 날 잘못 걸려온 전화벨의 딸꾹질로 그만 밤을 새워버린

어느 날 횡단보도를 못본척 하다가

어느 날 날 물끄러미 쳐다보는 안경의 속눈썹을 세려고

어느 날 사진첩을 정리하다 먼지에 파묻혀 콜록거리면

어느 날 발걸레로 얼굴을 문지르다

어느 날 목이 쉬어버린 판을 엎어치기하고

어느 날 마주 잡은 손이 돌덩어리가 되려 하고

어느 날 별로 상쾌하지 않은 양말짝의 목을 조를 때

어느 날 돼지저금통의 잔고가 허리띠를 잡고 늘어지면

어느 날 생선가시가 목에 걸려 허파가 겁겁한

어느 날 시간의 흡반에 엉겨 바락바락 혈압만 올리다가

어느 날 장땡이를 쥐고도 팔자를 못고친

어느 날 무덤에 풀 뜯으러 갔다가

어느 날 우두커니 서 있다 물벼락을 뒤집어썼으니

어느 날 어디에선가 울고있을 아이를 위해서

어느 날 껄떡껄떡 나는 울다가

어느 날 고주망태가 되어버렸다.